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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기] 모순- 양귀자
    이것저것 읽어보기 2026. 2.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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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한 번씩 결정의 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선택이 나에게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번 지나간 길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양귀자 작가님도 이런 생각의 발로에서 "모순"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와 일란성쌍둥이인 이모가 결혼 이후 달라진 인생을 보여주며, 결국 주인공 안진진의 모순된 선택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최근에 이런저런 책들을 가끔씩 읽고는 있었지만 뭔가 글로써 정리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은 오랜만이었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글의 작성을 LLM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렇게 AI의 도움 없이 온전한 글을 쓴다는 게 참 어색하긴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건 그만큼 이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겨두고 싶어서겠지. 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진진의 엄마는 일란성 쌍둥이이지만 몇 분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모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향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둘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엄마는 분명 순하고 착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남자를 만나 결국 혼자서 자신과 남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억척스러운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진진의 이모는 주인공의 표현에 따르자면 매우 심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본인의 가정에 충실하고 능력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모는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사람이 되어 갔으며 아직도 소녀스러운 품성과 외모를 유지한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날에 태어나고 같은 날에 결혼해서일까. 신기하게도 이모네 역시 진진이네와 같이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다. 이 두 사촌은 모두 미국에서 학위 중이며 인생의 탄탄대로를 그리고 있는 반면 본인은 대학도 나오지 못한 평범한 회사원이고 남동생은 건달이다.
     
    이런 안진진은 현재 선택의 기로에 있다. 나에게 관심을 표하는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 이 둘 중 누구와 평생을 함께할 것인지 말이다. 순수하고 수채화 같은 가난한 야생화 사진작가 김장우와 계획적이고 저돌적이며 돈이 많은 나영규. 안진진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김장우는 아버지에 대응되는 남자로 보이며, 나영규는 이모부에 대응되는 심심한 남자로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안진진은 김장우라는 남자에게 끌린다. 그와의 만남에 대한 묘사는 서정적이며 감정적이지만 나영규와의 만남은 직설적이며 이성적으로 그려진다.
     
    안진진에게 있어서 이모는 엄마의 거울 같은 존재다. 만약 엄마가 이모부 같은 남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지금의 엄마처럼 장사를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본인의 흥미를 위해 소설을 읽고, 아버지나 동생의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가요를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엄마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의 인생도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을지 모른다.
     
    진진의 엄마에게는 무수한 시련이 닥친다. 그래서인지 쉴 틈이 없다. 동생은 여자 때문에 한 남자를 집단 폭행하여 감옥에 갈 처지가 되었고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기 위해 해본 적 없는 법 공부를 하고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장사 시간을 늘린다. 집을 나갔던 아빠는 치매 환자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이에 비해 이모의 삶은 심심하다. 두 자녀라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 외로움이 조금은 달래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둘은 영원히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다 진진에게 이모의 소포가 온다. 유언이었다. 아마 네가 이 소포를 받았을 즘에는 나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 있을 테니 내 시신을 잘 수습해 달라는 그런 얘기였다.
     
    온갖 시련과 핍박을 받아온 엄마는 그렇게 맹렬하게 삶에 투쟁하며 버텼는데 왜 이모는 그렇게 평온한 삶을 살았으면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누군가는 쌍둥이를 하나의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닮은 존재여서일까. 이모에게 자신의 삶은 너무 무료했으며 남들에게는 완벽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자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모의 자살과 함께 진진은 김장우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나영규와 결혼한다. 사뭇 이모부를 닮은 재미없는 남자. 이모를 묘하게 닮은 그녀였지만 그리고 이모가 그런 삶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았음에도 그녀는 나영규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왜 진진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그녀에게서 매번 느껴지는 엄마에 대한 묘한 연민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분명 자신에게 어떠한 삶이 더욱 적합할지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이모와는 다를 것이라는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으려나.
     
    삶은 참 모순되어 있다. 논리적인 사고만으로 삶이 흘러가지도 않으며 우연이나 한 순간의 감정으로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불쌍하고 어려워 보이는 어떤 삶이 자신에게는 매일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외적으로는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는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감옥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삶은 알 수 없는 것이며 단순한 가치 판단만으로 정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소설은 줄거리 자체도 흥미로워 읽기 좋았지만 꽤나 좋은 문구들도 많이 담고 있는 책이었다. 예를 들어…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실로 사실이며 지혜로운 말이다.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은 국어 책을 제외하고는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좋아하는 작가로서 다른 소설들도 한번 선택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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