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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기]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이것저것 읽어보기 2022. 5. 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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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아직까지도 대답을 하기가 망설여진다.스스로도 확신이 없으니 대답은 대체로 장황하게 시작된다. 예전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좋아하게 같다고 말이다. 막상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분명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설레임과 새로운 경험들이 좋긴 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얼른 집에 돌아가 마냥 쉬고 싶고 역시 여행하면 고생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도 한다. 이런 면을 생각해 보면 여행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이후로 1년에 한두 번은여행을 떠나고 있다. 코로나 시국 동안에는 해외여행은 하지 못하였지만  국내에 가보지 못했던 곳을 여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행은 내게 어떠한 의미가 있어서 이렇게 꾸준히 떠나게 만드는 걸까. 도대체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이런 궁금증에서 김영하의여행의 이유 생각을 다시금 정리할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추방과 멀미) 아마 이 첫 번째 장에 김영하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의 주된 이유가 담겨있지 않나 싶다. 본 장에는 그의 흥미로운 두 여행 경험담이 고스란히 녹아져, 그에게 또는 우리 자신에게 여행이 어떠한 의미인지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어떤 기대를 품고 떠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든 그 다른 방향의 길을 납득하며 어찌어찌 여행을 마친다. 결국 여행은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래 왔던 것 같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나였으나 여행 계획은 내 생각대로 흘러간 게 거의 없다. 날씨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였고, 비행기 연착이라든지 작은 사고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 일어났으며, 아니면 가려던 식당이 갑자기 휴업을 하게 되었다든지, 아니면 망해서 없어져 버렸다든지 등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에 스트레스받고 계획대로 되지 않음에 괴로워했는데, 여행을 자주 떠나게 되면서 어떠한 상황이 생기든 주어진 현실에 금방 적응하고 그런 혼란의 순간조차 즐기는 그런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인생공부를, 여행이라는 짧은 과정을 통해  강렬하게 달성해 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좀 더 쉽게 터득해 보고자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이 부분은 나 조차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집은 의무의 공간으로,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항상 할 일들이 눈에 밟힌다. 그리고 오래 살아온 집에는 그만큼 여러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 낯선 숙박 시설에서 며칠밤을 묵게 되면, 우리는 이런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게다가 우리에게 정리의 의무도 없다. 실컷 그 공간을 어질러도, 떠나면 그만이다. 이런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흠.. 뭐 오랜 자취 생활을 통해 나에게도 집은 의무의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집안일하는 것을 싫어하진 않는 편이기에 이런 관점에서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없는 집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불안감이 더 강하게 든 적이  많았다. 하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이런 불안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는 하니,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닌 타고난 의무와 일상으로부터 내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정도는 여행이 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오직 현재)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일부 동의하긴 하지만 이건 사람 성향에 따라 좀 큰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얘기를 빌어 나의 경우를 설명해보자면, 나는 iNtuitive 성향이 강해서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세상의 흐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여행에서도 역시나 그런 태도를 가진다.. 이 일정이 끝나면 앞으로 어떤 일정을 해야 할지 오늘 이걸 소화하면 내일은 어떤 것을 하는 게 더 좋을지, 아니면 그때 저기를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지, 현재를 보내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가지고 고민한다. 혹시라도 여행 중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 그것에 대해 하루 종일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행을 무사히 그리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당면한 과제가 있기에, 그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 불안은 현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잠자리에 누워 고민하는 순간과 그 생각의 분포 범위가 다르다고나 할까. 사실 나의 과거 집착적이고 미래에 대해 근심하는 성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여행이 조금은 나를 현실 지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작가와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그렇게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작가는 인간에게 여행은 그냥 태생적으로 새겨진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피곤하고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말이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여행의 수요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 했지만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인류는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아니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많이 이동하고자 한다는 것을 통계는 보여준다. Metaverse 기술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이 파리의 에펠탑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감상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지 않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인간에게는 태생적으로 그런 기질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알쓸신잡 이야기): 종종 여행서나 TV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여행의 경험에 얹혀 좀 더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비여행, 탈여행을 통해 이루어진 경험을 나 스스로 느껴보고자 그곳으로 떠나보게도 되고, 이렇게 나의 경험이 더해지며 하나의 새로운 여행 경험이 완성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를 사나이): 이 부분이 꽤나 흥미로웠다. 작가가 뉴욕에서 거주할 당시, 주코티 공원에서 뉴욕 시민들이 뉴욕의 미래정치적/경제적 평등에 대해 토론하며 월가에 대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는 자리를 털고 떠날 구경꾼에 불과하였으며, 사회에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는 존재였다. 새로운 사회에 들어와 같이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있으나 그림자가 없는 그런 존재가 된 느낌. 어떻게 보면 집이라는 의무의 공간에서 해방된다는 맥락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파업과 시위 현장을 바라봤다. 분명 그들과 함께 도로를 걷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들의 주거공간에서 지내고 있었으나,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이며 불편일 뿐이었다. 한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투명인간이 된 느낌, 그리고 나라는 객관적인 주체가 아닌 이방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범주화되는 그 느낌…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홀가분할 때도 있고 그 사회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같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걸까.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여행을 다니게 되면 알게 모르게 아무 대가 없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일본 오사카 거리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한 분에게 길을 묻게 되었고 영어로 대화가 되지 않자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길을 물어봤더니 가던 길을 멈춰 흔쾌히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셨던 분. 파리에서 짐을 찾지 못해 고생하고 있을 때 너무 감사하게 도와주신 파리 문화원 주재원 직원분.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나의 답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던 것 같다. 그런 감사한 도움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우리나라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찾아서라도 알려주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환대는 여행자가 보내는 신뢰와 쌍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뭘 믿고 익명의 사람을 붙들고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통해 우리 인류는 단순히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며, 그래도 인간 세상이 살만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노바디의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와 비슷한 느낌의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기에,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 특별한 존재가 되는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고, 나 자신은 South Korea에서 온 아시아 여행객으로 전락한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일 뿐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설명한다. 여행자라는 신분을 잊고 스스로를 뽐내고 대우받으려다 큰 위기를 겪게 되나, 스스로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였을 때 순조롭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그의 사례를 말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인생에서도 전반적으로 통하는 얘기인 것 같다. 스스로를 낮추고 남의 환대에 감사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반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고 남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도 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쉽다. 그렇기에 여행의 과정은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여행으로 돌아가다) 작가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독자가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이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고양된 정신을 품고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렇게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고 말이다. 가끔씩 내 삶이 너무 지루하고 매일 쳇바퀴를 돌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그럴 때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일상의 탈출. 하지만 그 탈출은 결국 일상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을 얻기 위한 것일 뿐..ㅎ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여행은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나에게 여행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들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내 자신에게 기존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그런 소중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굳은 의지가 여행으로 표출되는 게 아닐까. 막상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만 돌아와야 하는 종착지는 내가 있었던 바로 그곳, 그 자리니까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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