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DIY 명화그리기

이번에 새롭게 오피스를 받게 되어 이것저것 새로운 물건들을 들여놓고 있다. 화분도 몇 개 사서 두기도 하고 책상도 높이 조절이 되는 최신 책상으로 교체하였다. 무엇보다도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했는데 좀 이상하긴 했지만 공간을 넓게 쓰고 싶어 가구들을 벽 쪽으로 붙여서 배치해 보았다. 기존에 쓰던 가구들을 많이 재활용해서 여전히 오피스 벽과 유사한 빛깔의 그레이 톤 가구들로만 가득 차서 그런지, 방문하신 분들이 공간이 꽤나 넓어 보인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인테리어 전문가 호박사는 냉철하게 몇몇 가구는 당장 버려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오피스에 너무 포인트 컬러가 없는 것 같으니 소파에 깔 카페트를 하나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ㅎㅎ 그리고 휑한 벽에는 그림이나 액자를 걸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림이라...! 마침 호박사가 요즘 DIY 명화 그리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도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오피스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일주일간 고민하다 바로 어차피 급한 일도 이제 다 끝난 거 같으니 얼른 주문해서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작품을 골라야 했는데 호박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여, 곰곰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뭔지 생각해봤다. 가장 느낌이 좋았던 건 고야 작가의 "The Third of May 1808"이었다.  이 그림을 보게 된 건 아마 유명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나폴레옹의 침공에 저항하던 스페인 시민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광경을 그린 작품인데 인물의 심리 묘사나 구도, 그리고 빛 등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림 한 장 만으로 그 상황의 절박함과 그들이 느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처음 이 작품을 작은 책자에서 보게 되었을 때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안 그래도 우울한 느낌의 내 오피스에 이 그림을 걸기는 좀.. 그래 보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다른 대체작으로 떠오른 것이 고흐였다. 유화하면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이고 그의 덕지덕지 칠해진 물감의 느낌이 좋기도 하고, 그런 투박함(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이 나의 붓질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어 일단 고흐의 작품들을 살펴봤다. 당연히 처음에는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좋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볼까 했다. 잘 그릴 자신은 있었는데.. 뭐랄까 이 그림 역시 좀 우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결국 고심 끝에 고른 작품이 바로 "해바라기"였다. 노란 빛깔이 뭔가 전체적으로 오피스에 밝은 기운을 줄 거 같았고.. 게다가 해바라기가 나름 재물운을 불러온다고 하여.. 크하하하. 요즘 자산시장이 왔다리갔다리 하는데 구복 신앙적인 느낌으로다가 오피스 환경 개선 및 재물운까지 노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하며, 최종적으로 "해바라기"를 그려보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쿠팡이 비싸긴 한데 로켓 배송이 정말 대단하긴 했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이라니.. 그것도 토요일에 주문해도 일요일에 도착한다는 그런 어마어마한 유혹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다양한 명화 그리기 키트가 쿠팡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리플이 꽤나 많이 달려있는 이 회사의 키트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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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 명화그리기 고흐의 해바라기 40 x 50 cm

원작과는 색감이 꽤나 다르긴 한데 특유의 화사한 느낌이 좋았기도 하였고, 원작을 완성하신 분들이 포토상품평을 달았던 게 컸다..ㅋㅋ 로켓 배송을 위해서는 총 주문 금액이 대략 2만 원을 넘어야 했는데, 주문하는 김에 호박사가 이젤도 주문하라고 해서 가격이 저렴한 이젤도 함께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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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시크릿 알루미늄 이젤 SHJ-33

로켓 배송답게 그다음 날 바로 물품들이 도착했고, 기다려도 될법했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받자마자 색칠 작업에 착수했다. 나의 전략은 그냥 번호대로 색칠하기였다. 1번부터 시작했는데 듣던 대로 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번호를 찾는 것이 문제였다. 붓은 3 종류가 오긴 했는데 가장 많이 쓴 것은 중간 크기의 붓이었다..ㅋㅋ 넓은 면적을 칠할 때 말고는 계속 중간 크기 붓만...ㅋㅋ 아마 받은 당일에 1,2,3번까지 칠했던 것 같다..ㅋㅋ 낮부터 시작해서 거의 밤까지.. 계속..ㅋㅋ

하루에 최소 1개의 번호는 다 없애버리자는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체력이 남거나 시간이 남는 날에는 2개 이상을 하기도 했다..ㅋㅋ 사실 일요일에 색칠해보고 너무 재밌는 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운동 가기 전 새벽에도 계속 색칠을 했다. 

이게 딱 받은 지 3일 만에 칠한 영역이다.. 별로 못 칠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정말 번호 찾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든다.

이제 대망의 해바라기 꽃잎 색칠 작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급한 일도 끝났으니 내일은 휴가 쓰고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휴가를 쓰고 아침에 운동을 다녀온 이후 미친 듯이 색칠만 했다. 정말 잡생각 하나도 들지 않고.. 신나게 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점심 먹고 낮잠 좀 잔 뒤 좀 더 완성을 시켜봤다. 밝은 노란색이 화사하고 너무 좋았는데.. 캔버스에 인쇄된 저 녹색선과 번호가 아무리 덧칠을 해도 비쳐 보이는 거다..ㅠㅠㅠ 일단은 다 완성시키고 다시 덧칠을 해보는 걸로 결정했다.

이건 금요일 밤까지 그렸던 부분이다. 이제 잎 부분을 색칠할 정도가 되었다.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 늦게까지 그려도 된다는 생각에 저녁 먹고 10시 정도에 집에 들어왔는데 한 2시간 정도 작업했던 것 같다. 뭔가 번호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난이도가 확확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붙고 말이다.

토요일 아침 드디어 배경을 칠하기 시작했다. 뭔가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하필 오후에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건 또 너무 미친 것 같아 참았다....ㅋㅋㅋ 

돌아온 뒤 또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진짜 해바라기 꽃잎을 색칠한 이후로 체감 난이도가 너무 떨어진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이 작업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진짜 스피드가 확확 올라가더라. 원래 계획은 일요일에 마무리하는 거였는데.. 그냥 오늘 다 마쳐버리기로 했고.. 결국 완성...!

마지막으로 코팅액을 조심스럽게 2번 정도 덧칠해서 발라주었다. 코팅액을 바르기 전과 후의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캔버스에 인쇄된 숫자는 어떻게든 가려보았는데 테두리는... 도저히 ㅠㅠㅠ 

이렇게 작품을 완성하고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영화 한 편을 본 뒤 잠이 들었다. 그렇게 딱 일주일 만에 한 작품을 완성하여 이렇게 내 새 오피스에 걸어둘 수 있었다. 원작과는 많이 다른 색감에, 가까이서 보면 테두리선 때문에 색칠 놀이만 한 작품이라는 것이 금방 들통날 것 같지만, 처음 이 그림을 발견하신 분들에게는 내가 고흐 작품을 보고 모작한 거라고 적당히 속여 볼 예정이다. 뭐 어찌 되었든 그리는 과정도 너무나 행복했고 완성된 작품도 훌륭해 정말 만족스러웠다. 내 성향에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의 빨리빨리 끝내버리기 스킬과 절묘하게 조화가 이루어져 신속하게 마친 일이기도 하였다. 원래라면 여유를 가지며 시도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웠다.

다른 작품도 얼른 해보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다른 일들은 다 내팽켜치고 이것만 또 할 것 같아 한 동안은 잠시 쉴 계획이다 ㅋㅋ 다음번에는 조금 짙은 색깔 위주의 작품을 골라 캔버스에 인쇄된 숫자나 테두리를 감쪽같이 가릴 수 있는 그런 그림을 시도해 보고 싶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중에서 고르고 싶은데 괜찮은 그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원래 하려고 했던 "별이 빛나는 밤"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여하튼 코로나가 가져다준 여유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나 할까..ㅋㅋㅋㅋ 나중에 은퇴하면 진짜 그림은 꼭 배워봐야지 하는 확고한 믿음을 만들어 준 기회였기도 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을 때 얘기겠지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