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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기]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이것저것 해보기 2021. 8. 1. 17:10

     

    LH 사태를 예견하여 항간에 화제가 되었던 유현준 교수. 알쓸신잡 2기를 보지 못해 유현준 교수가 어떠한 인물인지 잘 알지는 못했으나, 내가 즐겨 듣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인터뷰하는 내용을 듣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고 느꼈다. 자연스럽게 이제껏 그가 한 얘기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어왔는지 관심이 생겨 여러 매체를 뒤져보게 되었고, 한 강연에서 왜 서울 시내에는 커피숍이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갈라놓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듣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때마침 유 교수님이 우리 연구소에 강연을 오게 된다는 알림을 보게 되었고, 강연장을 찾아가기에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온라인 중계 강의를 들었다. 역시나 기대에 걸맞게 그의 강연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 당시 강연의 주제가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었는데, 세미나에서는 책과는 다른 흐름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 중복되는 내용처럼 느껴진 부분도 있었으나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공간의 미래" 는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바와 같이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공간들이 코로나에 의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집, 회사, 학교, 종교시설, 상업시설, 공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가질법하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 정말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9장 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10장 국토 균형 발전을 만드는 방법, 11장 공간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하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코로나라는 사태가 우리가 현재까지 안주해가며 살아가고 있던 공간을 재조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를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발전할 기회를 동등하게 주면서도, 그 기회를 쟁취하여 성공한 이들에게는 큰 부가 주어질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그렇다. 그는 너무나 합리적인 자본주의 사고관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인데 왜 그런 당연한 소리를 그는 책까지 써가며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지 못하는 방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공간 개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가 제시한 공간의 미래도 흥미로웠지만, 나는 그가 제안한 주장들에 더 큰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그 부분을 먼저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내용을 정리한 이후에도 여력이 된다면 그가 제시한 공간의 미래 부분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민주주의 이전 귀족이나 지주는 자신이 보유한 영토를 민중들에게 빌려주어 그 땅에서 나는 곡식을 일정 부분 받거나 화폐로 돌려받았다. 이제 귀족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지주들은 존재한다. 바로 땅과 건물의 주인들. 즉, 21세기의 소작농들은 월세를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주가 아닌 일반 대중으로 볼 수 있다. 나도 학부를 위해 서울로 떠나오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값싼 기숙사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하숙집과 원룸을 전전긍긍하며 지내왔었다. 월세는 대략 30만원에서 50만원에 육박하였는데 학부생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집을 살만한 자금 여력이 없었는걸. 이렇게 월세로 용돈이나 월급을 뜯기다 보면 결국 집을 살만한 돈을 모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상황이 나아 석사과정을 할 당시에는 부모님이 도움으로 전세 5000만원 짜리 오피스텔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오피스텔의 가격이 정확하게 기억은 나진 않지만 아마 전세금에서 3-4천만원 정도만 더 있었다면 그 오피스텔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전세금 낼 돈은 있었으나 집을 살 돈은 없었고, 그렇게 그 오피스텔은 오피스텔임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2억은 줘야지 살 수 있는 집이 되어버렸다. 하하.

     

    그렇다. 21세기의 소작농, 월세납부자들은 영원히 노동 수익의 대부분을 지주에게 상납하여,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근성 하나로 버티는 민족이기에 허리띠를 꽉 졸라매며 어떻게든 악착같이 모아 집을 사고 그렇게 소작농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 5년 전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떠한가. 서울 시내의 집값은 노동 소득을 모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치솟아 버렸다. 이제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소작농의 신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주식에 전념하고, 가상화폐니 로또니 하는 것들에 목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발전이 있을까. 유현준 교수는 제안한다. 모두가 지주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이다. 그렇게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서울의 용적률을 확실히 올려주자는 것이다. 현재 서울 아파트의 용적률은 200% 정도로 다른 세계 대도시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물론 용적률이 높아짐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들도 있을 것 같다. 도시내의 밀집도가 극심해지고 일조권 문제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 도시의 삶이 싫다면 그들은 서울이 아닌 도심 외곽으로 이전할 것이다. 지금처럼 GTX라든지 광역 교통망을 잘 개설하여 도심 접근성만 높여준다면, 가족들과 쾌적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외곽으로 나갈 테고, 도심에 가까이 살며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이들은 도심에 남을 것이다. 또한, 유 교수는 임대주택같이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정책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것이어야지 최선을 다해 아끼고 발전하려고 하는데, 임대 주택은 그런 의욕 자체를 꺾어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시로 칠레의 건축가 아라베나가 제안한 저소득층을 위한 '엘레멘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칠레 정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저소득층을 위해 영구 임대 주택을 지어 주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엘레멘털이라고 하는 절반만 지어진 집을 분양해주고 나머지 반은 거주인 스스로 벌어 완성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하였다. 세상은 공짜가 없고 당신이 노력하면 최소한 노력한 만큼은 보상 받는 사회, 정말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다.

     

    유현준 교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더욱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획일화 일로에 들어가고 있다. 정형화된 아파트. 이로 인해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화폐 단위와 같은 자산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저 친구는 반포에 아파트에 산다지? 아 저 사람은 쌍문동의 주택에 산다더군. 사실 그 사람의 가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실임에도 정형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이 사는 곳이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 분류해버린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추구되는 삶의 방향성이 10가지라면 행복한 사람이 10배로 늘어나게 되고, 만약 그 방향성이 300가지라면 행복한 사람은 300배로 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획일화되지 않은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 다양성을 죽이는 심의와 자문을 없애는 것이다. 물론 논문 투고 과정에서도 Review라는 과정을 통해 나아지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과도한 Review 과정은 오히려 독특한 아이디어를 말살시키고 과도한 객관성은 연구의 창의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물론 연구를 통해 논문을 써서 출판하는 일련의 과정은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중요한 덕목이 있으니 이 과정을 단순히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를 설계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는데에도 과도한 심의와 자문이 필요할까. 두 번째로 그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현재 지식산업센터라고 불리는 곳은 공장형 건물들이 즐비하고, 각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 전혀 소통하지 못하여 그 건물에 틀어박혀 일하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이런 소통 없는 환경에서 어떠한 새로운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는 창의적 융합이 일어나는 스마트타운을 만들려면 우연한 만남이 기분 좋게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 공원과 벤치, 도서관, 갤러기 같은 공간들이 사무 공간과 융합된 것이다. 이상적인 얘기이지만, 아직 우리 한국인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낯선 문화임에는 분명하다. 모르는 사람과 격식없이 대화하는 것은 조금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과정들이 우리 사회가 창의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절감하고 있으며, 낯선 문화라고 해도 그게 올바른 방향이라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차츰 고쳐나가면 될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민을 위한 무료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와 다르게 서울에는 공원도 부족하고 거리에 많은 이들이 편하게 무료로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렇기에 한국만큼 카페가 많은 곳도 없다고 한다. 시민들은 편하게 담소를 나누기 위해 카페로 향하게 되고, 커피 한잔에 5000원은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사람들과 2000원 정도만 쓸 수 있는 사람들로 나뉘며 사회는 점점 분리의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시민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경의선 숲길과 같은 곳을 서울 시내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 도심에 어떻게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가. 바로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화물 트럭이 도로를 장악하는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이런 물류 트럭을 지하에서 운행하게 한다면 도로에 존재하는 차량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도로의 1-2차선 정도는 공원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의선 숲길과 같은 횡방향의 긴 공원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렇게 여러 지역사회를 통합하여 쉴 수 있고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간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한 번 지어지면 공공의 공간 속에 오랫동안 남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세종시 교회 건축물을 설계했을 때 여타의 교회와는 다르게 1층 공간을 많은 이들이 지나다니며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저상하였고, 교회라는 느낌을 주기 보다는 다양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바닷가의 카페를 디자인할 때도 건물을 가로로 길게 건축하여 전망 좋은 카페석을 늘리려고 하기 보다는, 외부인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도록 건물을 분리하여 건축하고 그 건물들을 이어주는 산책로를 만들어 다양한 각도에서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이용객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건축물을 디자인하였다. 하긴, 부산 기장에 있는 힐튼 호텔만 해도 숙박객이 아니어도 산책로와 벤치들을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산책로를 몇 번 가다보면 저 호텔에서 꼭 묵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결국 하룻밤 숙박도 하지 않았나. 사회적 가치까지는 모르겠지만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한 선택이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방향들에서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다분히 이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여주고 건축물에 대한 많은 심의와 제약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강북이나 내가 살고 있는 월곡의 주택단지를 가보면 정말 햇빛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내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던 원룸이나 오피스텔 건물들은 어떠했는가. 창문을 열면 바로 앞 건물의 다른 방이 보이는 그런 우울한 공간이었다. 용적률을 상향시키고 건폐율을 높여준다면 도시에 이런 건물들이 양산되지는 않을까. 그런 공간들로 즐비한 서울은 과연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 될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더 중시하는 가치는 효율성이고 경제성이기 때문에 그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 건축물을 디자인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또한, 그가 제시한 세종시 교회 건물에 대해 마침 세종시에 사는 친구가 있어 물어보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친구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였으며 친구도 잘 알고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너 혹시 그 교회 아느냐고 물어보니, 잘 안다며 주말마다 주차 때문에 항상 문제를 겪는 그런 곳이란다. 이유인즉슨, 1층을 여러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디자인하다 보니 주차공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 덕분에 예배가 있는 주말이면 그 근처 도로에 많은 차량이 갓길 주차를 해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을 불러일으켜 문제가 되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세종시는 대중교통이 원활한 편은 아니라 대부분이 개인 차량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런 슬픈 답변을 듣고 그래도 그 건물 나름 예쁘게 지어졌던데 교회같은 느낌은 아니지 않았냐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 왈 그냥 교회던데라는 한마디로 일축하였다. 하하!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큰 법이다. 지하 물류 터널 역시 아이디어 자체는 획기적이고 훌륭하지만 과연 그가 제시한 예산만큼만 소요될까. 서울 시내에 많은 경전철이 지어지고 있는데 여러 이익이 충돌하며 지연되는 경우도 많고, 설령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으나 운영과정에서 적자를 맞는 경우가 많다. 지하 물류 터널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터널이 운영되는데 필요한 비용 등을 고려하였을 때 정말로 효율적인 결정인지는 다시금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이런 회의적인 생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그의 생각이나 주장들을 흥미롭게 생각하며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느끼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바뀌길 바란다. 그 역시 그가 말하는 생각들은 단순한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해야 그 생각들 틈바구니에서 더 새로운 생각들이 창출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훌륭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공간변화의 미래도 매우 재밌는 부분이 많지만, 지금 작성하고 있는 글의 내용이 좀 복잡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정도에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교회나 학교 건물의 디자인이 주는 어떤 심리적인 압박감 등 공간 디자인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섬세하고 다루고 있는 책이니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봐도 좋을듯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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