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박하사탕 - 이창동
    이것저것 감상하기 2021. 12. 19. 14:42
    반응형

    이 영화 역시나 주호민 작가님의 추천작 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봐야지 했던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다들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장면,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 라며 절규하는 설경구. 그 장면만 생각해봐도 이 영화는 영화 제목이 풍기는 상큼한 향과는 다른, 유쾌하지 않을 법한 내용이 가득한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래서인지 쉽사리 보기로 마음먹기가 어려웠는데, 결국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영화는 실성한듯한 모습의 영호(설경구)가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호의 낯빛은 극도로 어두웠으며, 오랜만에 만난 봉우회 사람들에게 묘한 공격성을 내보이며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그는 마치 곧 죽을 사람인양 철로 위로 올라가 흐느적거린다. 봉우회 회원 중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런 실성한 영호를 뒤로 한 채 수다를 나누고 있다. 결국 영호는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그 유명한 대사를 내뱉고, 영호의 일그러진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마치 그의 삶의 주마등 인양 이야기는 삶을 거슬러가기 시작한다.

     

    시간은 거슬러 영호의 죽음 사흘 전, 역시나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의 영호는 운전 중이다. 라디오에서는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가 있을 거라며 옛 친구들 모두 함께 모이자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영호가 운전해 간 곳은 어느 부둣가. 그리고 그는 권총 한 정을 구매하여 차에 오른다. 그렇게 그는 권총 자살을 시도해 보지만, 권총은 신기하게도 불발이 된다. 그렇게 그는 어떤 은행으로 향하고, (아마도 자신의 사업을 망치게 한 투자가로 추정되는) 어떤 이를 찾아가 그의 앞 창 유리를 향해 총탄을 갈긴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누군가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찾아간 이는 싸늘하게 대답하며 그는 강아지를 보러 왔다는 말만 남기고 자신이 거쳐하고 있는 낡은 비닐하우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수상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나 그와 함께 그 비닐하우스에 들어간다. 영호는 총구를 휘두르며, 내 남은 재산으로 겨우 산 게 이 총 하나라며. 혼자 죽기는 아쉬우니 딱 한놈만 죽이고 가겠다며, 자신을 망하게 한 이들을 나열한다. 증권회사 직원, 사채업자, 동업하자고 하다 사기치고 도망간 친구..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저승길 동무로 삼고 싶다며 울부짖는다. 사실 이 대목에서 앞으로 그려질 내용이 그가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했다. 사채업자라던지 도망간 사기꾼 친구 얘기라던지.. ㅎㅎ 하지만 영화는 전혀 그런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하튼 그런 그의 광기 어린 외침에, 의문의 남자는 자신을 순임의 남편이라고 밝히며, 그녀가 죽기 전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순임의 남편은 영호에게 정장을 차려 입히고 영호는 박하사탕 한 통을 사서 순임의 병실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순임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며, 영호는 군대 시절 그녀가 보내온 박하사탕을 아직까지 모아둔 것이라며 그 박하사탕을 두고 급하게 병실을 나간다. 순임의 남편은 영호에게 카메라를 하나 주면서, 당신 것이라며 그 카메라를 전달하고, 영호는 그 카메라를 4만 원이라는 가격에 중고상에 매입해 버린다. 카메라에 들어있던 사진은 현상도 하지 않은 채 버려버린다.

     

    시간은 앞으로 흘러 1994년 여름으로 향한다. 번듯한 차림의 영호가 나온다. 뭔가 사회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나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는 심부름센터 직원을 통해 아내 양홍자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급습한다. 영호 역시 본인 회사의 사무직원인 미쓰리와는 불륜관계다. 영호와 미쓰리는 교외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어린아이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와 마주친다. 그 아이의 아버지와 영호는 안면식이 있는 관계로 보이며, 묘하게 영호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영호는 마치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만난 맹수처럼 그를 농락하는 듯하다. 그 아버지는 영호에게 아직도 경찰일을 하냐며 묻고, 그제야 그는 과거에 경찰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호의 집들이. 아내 양홍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인지 손님들을 모셔 놓은 자리에서 구구절절 기도를 외운다. 그러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가 저지른 죗값에 대한 울분인지 그녀를 이렇게 내몬 영호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영호는 이 이일을 계기로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이며 지난 챕터에 찾아갔던 아파트는 양홍자의 집으로 여겨진다. 이 추측의 매개체는 딸도 아닌.. 강아지..ㅎㅎ 생각해보니 이전 이야기에서 찾아갔던 아파트에서 영호는 딸은 만나지도 못했고 그가 그렇게 발길질을 했던 강아지만 그를 반겼다.

     

    시간은 흘러 1987년 봄. 형사인 영호와 만삭인 홍자의 모습이 나온다. 이미 권태기가 온 것인지 그의 부부관계는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전 챕터에서 만났던 그 아이의 아버지.. 영호는 그를 목욕탕에서 만나 연행하여, 가진 고문 끝에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어낸다. 그렇게 영호 일행들은 군산에 출장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는 군산에 살고 있는 첫사랑 순임을 추억한다. 군산의 술집에서 경자라는 여인을 만나 그는 첫사랑 순임을 추억한다. 아내인 홍자에게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던 그가, 경찰서에서는 갖은 고문을 일삼으며 폭언을 쏟던 그가, 첫사랑 순임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로맨티스트적인 모습을 보였다. 술집 여자인 경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 반했던 것인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수배자를 구속하여 군산을 떠난다.

     

    1984년 가을. 신참내기 형사인 영호의 모습이 나온다. 그의 아내인 홍자는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영호를 짝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영호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과격하게 심문하여 그의 손이 그 심문자의 똥으로 더럽혀진 바로 그날, 아마 손에 묻은 그 똥 냄새는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다른 형사의 조언을 들은 바로 그날, 첫사랑 순임이 그를 찾아온다. 홍자가 일하는 식당에서 조우한 영호와 순임. 순임은 영호를 오랫동안 찾았다며 얘기하고 그의 투박한 손에서 순수함을 느꼈다는 얘기를 한다. 영호는 그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순임이 사랑했던 그 손으로 홍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보란 듯이 그녀의 앞에서 성추행을 해버린다. 그럼에도 순임은 그가 좋아했던 카메라를 선물로 주지만, 영호는 떠나가는 기차에서 순임에게 다시 카메라를 전달한다. 그렇게 그와 순임의 만남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순임을 떠나보내고 동료 형사들과의 회식 장소. 술에 취한 영호는 온갖 행패를 부리며 군대식 언어를 사용해 사람들을 핍박한다. 뭔가 군대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는 그런 암시를 내뿜는다.

     

    시간은 흘러 1980년 5월. 순임은 신병 영호를 면회하러 군대로 찾아갔다. 하지만 계엄령이 떨어진 상태라 면회는 불가능했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형사였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는 정말 미숙했으며 다른 군인들에 비해 준비 속도도 가장 느리다. 급하게 출동하다 그는 모아두었던 박하사탕을 모두 바닥에 쏟아버리게 되었고, 무참히 군화에 밟힌 박하사탕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호는 광주로 출동하게 된다. 다행히도 출동하는 와중에 돌아가는 순임을 발견하긴 하지만 이미 깨어진 박하사탕처럼 그와 순임의 관계는 이 시점부터 어긋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사건은 바로 광주 민주화 운동... 매 챕터에서 트라우마적인 상황이 오게 되면 한쪽 다리를 저는 영호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밝혀진다. 바로 광주에서 출동하는 와중 다른 동료가 쏜 총탄에 그는 발을 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차에 숨어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하게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처음 그는 그녀를 순임으로 착각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길을 지나던 여학생이었고, 그녀의 사정을 듣고 군인들이 보기 전에 도망가라고 얘기한다. 마침 다친 그를 위해 다른 군인들이 나타나고, 영호는 위협사격을 몇 발 가해본다는 게 그만 그 여학생을 즉사시켜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는 순임이었던 그 여학생을 사고로 죽여버린다. 군화에 짓밟힌 박하사탕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시간은 다시 흘러 1979년 가을. 영호와 순임은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소풍을 나가게 된다. 바로 영화의 시작에서 가리봉 봉우회 사람들이 모였던 바로 그 장소다. 순임과 영호는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며, 영호는 아름다운 꽃 사진을 찍으며 미래를 보내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영호의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영화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담고 있는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보게 되었다. 한국 근대사의 굵직한 비극을 담고 있는데, 사업으로 몰락한 영호의 모습을 통해 IMF 사태를,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일어났던 만행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군인들의 시민 학상 및 그 후 경찰들의 민간인 사찰 등이다. 만약 그가 그때 그 여학생을 실수로 죽이지 않았다면, 그가 누군가를 고문하며 그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결국 영호라는 순수한 인물을 타락하여 절망에 이르게 한 것은 그 개인의 악한 마음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이 영화에서 순임은 영호의 선 또는 순수함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순임은 끊임없이 그를 향해 손을 던지지만 순수했던 영호는 더러워진 자신이 순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계속해서 뿌리친다. 사실 영호는 순임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번 주어진다. 형사 시절 때라도 그녀와의 만남을 거부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순임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영호를 그리워했고 어쩌면 그를 위해 카메라 속에 아름다운 꽃들을 찍어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 카메라 속 사진들을 인화해서 봤더라면 영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며 내 삶을 회고해 보게 된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호의 주마등을 담은 것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호의 외침처럼 그가 그토록 절박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순임과 만났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며, 열차는 멈췄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설경구라는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처음의 그 퇴색하고 미쳐버린 광기의 모습에서 시간이 되돌아갈수록 묘하게 앳되고 순수한 모습을 연기하는데 그런 다양한 모습이 한 인물에게서 연기가 된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왜 이 영화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 영화에 올랐는지, 왜 설경구가 이 작품으로 각종 영화상을 휩쓸게 되었는지 몸소 느낀 작품이었다. 물론 내 예감대로 썩 상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ㅎㅎ 다음번에는 좀 유쾌한 영화를 보고 리뷰하고 싶구만..ㅋㅋㅋ 디즈니나 픽사 쪽으로 말이다..ㅋㅋ

    728x90
    반응형

    댓글

T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