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 2년 정도 전일까.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서 괜찮은 단편 소설이라며 링크가 하나 걸려 있었다. 창비 신인 소설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사실 딱히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나는 IT회사에서 일하지도 않고, 일반적인 회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뭐랄까 기묘하게 공감이 간다고 해야 하나.. 짧지만 대단했던 이 단편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작가 글을 참 재미있게 쓰는구나’였다.’ 였다.
얼마 전 짧은 휴가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1시간 채 걸리지 않는 비행시간이지만 어쨌든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에 유튜브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그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여 볼까 하다가 딱히 볼 영화도 없기도 하고, 문득 쟁여 놓은 리디캐쉬를 아직도 다 사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캐쉬도 쓸 겸 요즘 베스트셀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훑어보았다. 잘 읽지 않는 인문학 책을 구매해서 읽어 볼까도 했지만 휴가로 가는데 무슨 인문학 책인가 싶었다. 여행은 소설이지. 베스트셀러 섹션보다 스테디셀러 섹션이 조금 더 신뢰가 가는 느낌이었기에 스테디셀러 목록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그러다 낯익은 제목을 발견하였다. ‘일의 기쁨과 슬픔’! 엇, 혹시 그 작가의 소설집인가 하는 궁금증에 목차와 줄거리를 훑어보았다.. 그 작가의 글이 맞구나. 비행기나 기차에서 큰 노력 없이 집중하며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책을 선정해야 하는데, 이 작가의 책이라면 확실한 재미는 보장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나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본 소설의 작가인 장류진 씨는1986년생의 늦깎이 문학도이다.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판교의 IT회사에서 7년 이상을 일한 경력을 가졌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 소설 쓰기에 대해 배우게 되었으며 이후 국문과 대학원까지 수료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경력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대가 비슷해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그리는 소설 속의 세계는 우리 세대의 현실과 꽤나 많이 맞닿아있다. 익숙한 생활 속에서 펼쳐지는 아리송한 드라마를 읽기 쉬운 문장들로 그려 놓았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본 책에는 총 8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정확한 나이가 언급된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직위나 생활환경 등을 보았을 때 대체로 30대 즈음의 인물로 보인다.. 적당히 사회물을 먹었으나, 아직은 모든 게 서투르고 어색한 어른들.
단편 소설들을 모은 만큼 어떤 단편을 전면에 배치하느냐는 작가의 의도가 가장 크게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발표 순서대로 배치한 건지 살펴보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렇다면 ‘잘 살겠습니다’를’ 첫 소설로 소개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공감과 재미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누구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미숙한 느낌의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측은할 뿐이지만 그 사람과 내가 충돌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감정은 측은함에서 불쾌감으로 바뀐다. 본 소설은 축의금이라는 내용으로 누구나 공감할만한 소재를 이용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어떤 사회에서든 꼭 한 명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인물을 소개하며 회사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보편적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하나하나 끼워 넣고 있다. 같은 일을 할지라도 남자 사원에 비해 연봉이 낮음을 은연중에 소개하고 있으며, 열심히 경력 개발을 해서 행복을 찾아나가는 것보다는 괜찮은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부당함.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그런 지점보다는 청첩장을 돌리는 식사자리, 축의금에 대해 하나하나 계산하며 상대방의 축의금 액수를 정하는 것, 그리고 돌아온 의외의 카운터 펀치 등에 집중했었는데,, 다시금 되새겨 보면 오히려 이런 내용은 부수적일 뿐이고 작가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부당함을 본 편에서 그리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해 보였다. 그렇기에 아마 미숙한 여성 동기에게 측은함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생활의 고통이 다시 한번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당근 마켓을 패러디한 것처럼 보이는 우동마켓의 여직원. 그리고 하염없이 새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거북이알이라는 닉네임의 인물. 그리고 그 둘의 조우를 통해 밝혀지는 어이없는 해프닝. 본 단편은 인터넷에 공개된 적이 있기에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찾아 읽어볼 수 있으니, 줄거리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여하튼 신기하게도 이 소설에서 부당함을 겪는 두 직장인은 모두 여성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이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와 ‘다소 낮음’은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특히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이제껏 앞의 두 소설과는 사뭇 다른 알콩달콩한 사랑 얘기가 전개될 듯 한 느낌이었다. 모든 게 능숙하고 완벽한 남성과 남편을 갑자기 사별하게 되어 일본으로 떠나게 된 전 직장동료 여성과의 재회. 진부한 연애 스토리일 줄 알았으나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여자에 능숙하다고 생각했던 남자는 사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단순히 그의 오만일 뿐이었다는 것. 통쾌하게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은 그의 발악하는 듯한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안쓰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의 오만함이 드러나는 마지막 묘사. 왜 하필 작가는 이런 남자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걸까..
‘다소 낮음’의’ 남자 주인공 역시 심각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꿈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예술하는 남자들의 전매특허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주인공은, 그를 열렬히 아꼈던 팬이자 여자 친구에 의해 유명세를 떨칠 뻔하였으나,, 자신의 아집을 이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모든 기회들을 하나 둘 놓쳐버린다. 그리고 그는 어째서인지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해온다. 밀린 고지서도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 그의 무책임함에 그에게 성공의 기회를 열여 주었던 여자 친구는 떠나고 무책임하게 분양받아온 강아지 역시 지켜내지 못한다. 이렇게 이 단편 소설집에서는 단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나오지만 그들은 결함투성이의 인물이다. 여성 주인공과는 상황이 다르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다.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주인공 여성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스팸글 및 광고성 리플들을 차단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피해 기발한 방식으로 성매매업체를 홍보하는 문구들이 올라온 것을 보며 그녀는 클린 한 인터넷 환경을 만들고 있음에도 그녀 자체는 더러워져감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새벽녘에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초인종을 누르는 낯선 이들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에 그녀는 극심한 두려움에 쌓여 생활하지만, 결국 그들이 성매매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잘못 찾아온 이들임을 깨닫게 된다. 실체가 드러나자 그녀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네들의 사진을 하나 둘 찍어 그녀의 방에 전시해 놓는다. 결국 그녀가 두려워했던 남성들은 그녀가 부지런하게 삭제해오던 광고에 낚여 올라온 불쌍한 물고기 들일뿐이었다..
아마 이 소설들은 작가가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을 해나가며 깨닫거나 알게 된 현실들이 많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소설의 재미를 차치하고 사실 남자의 입장에서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내용들이 마냥 편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처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그녀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어떤 큰 흐름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단편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한 재미있고 구성지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생각들 역시 존중한다. 나는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도 않고, 그들이 어떠한 불안감과 부당함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편적이지만 사회의 한 단면을 흥미롭게 그렸기에 그녀의 소설이 스테디셀러로서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그녀가 그리는 장편 소설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