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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기]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 – 어윈 W. 셔먼
    이것저것 해보기 2019. 10. 1. 07:00

    어릴 때부터 딱히 생물학이라는 과목을 좋아하진 않았었다. 암기할거리가 너무나 많았었고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들의 해부 사진을 보는게 썩 유쾌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물리라는 과목을 좋아하진 않아서, 수능을 볼 때는 화학2를 선택과목으로 선택하기도 하였지. 이런 기호가 반영 되어서인지 생물학에 관련된 교양 서적을 많이 읽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면 왜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가? 다름 아닌 이 책의 역자가 아는 동생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살 생각은 있었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가 재촉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이왕 산 책 안 읽어 볼 수는 없을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는데.. 아니 웬 걸!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은가!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의 저자인 Irwin W. Sherman은 UC Riverside의 생물학 교수였으며 말라리아를 연구하였다. 현재는 은퇴해 Scripps Research Institute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거주지는 바로 샌디에고 인근의 Del Mar!! 바로 지난 달 ACS 학회 참석 차 들르게 되었던 그 부촌이다. 이 책을 출판하고 돈을 꽤 버신 게 아닌가 하는 작은 추측이 들었지만, 연구한 분야 자체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에, 그런 관심이 부의 축적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본 책은 2007년에 첫 출판 되었으며 무려 12년이 지난 지금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역자 분의 첫 번역본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매끄럽게 번역되고 다듬어져 있어 읽기 편하다. 물론 전문적인 용어가 어쩔 수 없이 많이 사용되는 부분도 있어 버거운 부분도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 책이 역사서로 분류되어 있다고 하는데, 일견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기초 과학 서적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수능을 준비하며 배우는 생물학이나 대학교 기초 생물학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는 책인데, 이런 이들의 관심을 얻으려면 과학관련 상식서적으로 분류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본 책은 제목에서 서술하는 바와 같이 총 12가지 질병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체로 질병의 양상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왜 이런 질병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대부분이 전염되는 질병이기에 전파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병을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행해져 왔으며 어떻게 성공 혹은 실패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총 11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왜 12개가 아닌가 의아해하며 다시 책을 살펴 보니, 첫 챕터에 포르피린증과 혈우병이 함께 묶여져 있어서였다. 이 두 질병이 다른 질병들과 달리 한 챕터로 묶여서 소개된 바에 대한 나의 추측은 1) 이하의 병들과 달리 전염이 아닌 유전에 의해서 전달된다 2) 그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약함에도 이 병이 유럽 왕실에 만연하였기에 세상을 바꿀만한 질병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하의 질병들은 세균성 혹은 바이러스성 질병들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전염 경로에 대해서도 소개해 준다. 특히 왜 쥐나 모기가 박멸 되어야 하는지 본 책을 읽다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럼 그래도 기억에 남는 부분 을 추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누구든 책의 첫 챕터는 열심히 읽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인지 책의 첫 부분은 기억에 오래 남아있기도 한다. 물론 이런 보정 효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처음에 소개되는 포르피린증과 혈우병에 대한 얘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본 저자가 이 얘기를 첫 챕터에 넣은 이유는 아마도 미국인들이 가지는, 유럽의 오래된 역사에 대한 동경과 흥미가 크다는 점을 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먼 나라 이웃나라’ 독자 세대인 나 역시 유럽 역사를 꽤나 재미있게 읽어왔기에 좋기도 했지만 말이다. 포르피린증은 상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으로 성별에 관계없이 하나라도 결함이 있는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면 발현되는 병이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내가 기억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블러드 메리와는 다른 여왕이라고 한다..! 읽을 당시에는 착각했다..)이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었으며, 포르피린 중간 대사물이 축적되며 극심한 고통과 정신착란 증세를 유발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유전병은 ‘왕가’ 혈통이라는 독특한 특색으로 인해 그 양상이 복잡해 진다. 왜냐하면 숭고한 그들의 혈통을 유지해야 했기에, 폐쇄적인 결혼을 이어갔고, 유전병은 대를 계승하며 이어져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급 학부 때 생물학 수업을 진행하셨던 강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결혼은 다른 인종과 하라고. 혼혈이 여러모로 우월하다고 말이다. 강아지도 잡종이 더 건강하다는 말처럼 순종 교배를 진행하다보면 열성 유전병 역시 발현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 포르피린증과 함께 영국 왕가를 위협한 병은 바로 혈우병, 피가 응고되지 않는 끔찍한 질병이다. 혈우병은 X 염색체에 의해 유전되는 질병이기에 남성의 경우 혈우병이 100% 발현되지만, 여성의 경우 보인자로만 존재할 수 있다. 여성 혈우병 환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태아 상태에서 사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대영제국의 그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였다. 그녀의 높은 권세로 인해 그녀의 딸들과 손녀들은 다른 유럽의 왕가와 정략적으로 결혼을 이어가며, 이 저주받은 병을 유럽 왕가 전역에 퍼뜨리게 되었다. 이렇게 폐쇄적인 결혼 시스템은 끔찍한 결말을 나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도 점점 자본주의에 의한 신 귀족주의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빈다..하하하..

     

    콜레라하면 돼지 콜레라가 먼저 떠오른다. 어릴 때는 뚱뚱한 친구들을 돼지라고 놀렸는데, 돼지보다는 돼지콜레라가 어감이 좋아 그렇게 놀린 경우가 더 많다. 콜레라는 극심한 설사와 함께 탈수 증세를 동반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성 질병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체액을 충분히 보충해 주는 방식으로 콜레라에 의한 사망률은 현저히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본 질병에 의해 ‘세균병인론’이 논의 되었으며,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이와 같은 전염성 질병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본 장에는 나이팅게일에 대한 부분도 함께 언급되어 있는데,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을 당시에도 그녀는 의무실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을 통해, 부상당한 병사들의 추가적인 감염에 의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고 한다. 이제 공중 환경의 개선으로 콜레라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질병이 되었지만, 여전히 도시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방문하게 될 때는 유의해야 될 질병이다.

    천연두는 예방 백신이라는 획기적인 질병 예방 시스템을 고안하게 한 질병이며, 이로 인해 박멸된 질병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에 걸린 소와 접촉한 사람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하여 백신이라는 시스템을 고안한 이다. 파스퇴르는 이런 방식을 좀 더 발전시켜 약독화된 질병에 인위적으로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인체가 특정 항원에 대한 항체를 얻게 하는, 백신 방식을 창안한다. 이로 인해 인류는 다양한 질병에 대한 생존율이 극적으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굳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도 되는 현 상황까지 만들어 내었다.

     

    흑사병, 말라리아, 황열병의 감염 경로는 바로 해충이다. 흑사병의 경우 초기 전염 경로에 대해 다양한 설들이 존재하였으나, 잘 설계된 실험을 통하여 벼룩에 의해 전달됨을 확인하였다. 흑사병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에 의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인데, 벼룩이 감염된 동물의 피를 흡혈한 후 이동하며 다른 동물에게도 감염 시키게 된다. 특히, 작은 포유류 동물들에 의해 전파될 확률이 높다. 이런 사실을 몰랐을 당시, 인류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편했을지도 모른다. 흑사병은 인간에게만 전염되는 질병이 아니기에 아직까지도 박멸되지 못한 질병이다. 즉, 생물학적 테러를 벌이기에 적합한 질병이라는 얘기이다. 말라리아나 황열병은 악독한 모기에 의해서 전달되는 질병이다. 감염된 개체의 피를 흡혈한 모기 중에서도 특정 모기종에서만 본 세균이 배양되는데, 이 모기가 다른 개체를 흡혈하는 과정에서 전염된다. 나 같이 모기에게 엄청 잘 물리는 사람들에게는 안 그래도 혐오스러운 해충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모기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박멸시키고 싶어진다.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예방백신이 존재하는 천연두나 홍역 등과는 다르게 박멸이나 예방이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생성되며 생존해 나간다. 우리가 매년 가을 즈음 맞는 독감 예방접종도 완벽한 백신은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 해에 유행 할만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추측하고 그에 맞게 백신을 준비할 뿐이다. 만약 그들의 예상과 다른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면 예방접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숙주는 오리나 기러기와 같은 물새이다. 이 물새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성되는 숙주로써, 수 천 km를 이동하며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야생 조류의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바로 전파되기는 어렵지만, 이 바이러스가 돼지나 다른 가금류에 노출되어 적응된 이후에는 인체 감염에 유리해지게 된다. 즉, 조금씩 진화하며 인체에 감염가능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Directed evolution” 이라는 새로운 protein engineering 방식을 개발한 성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Frances Arnold 역시 이런 진화과정을 모방하여, 새로운 화합물을 생성하는 enzyme을 설계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명체는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진화한다. 인간도 그렇고 인간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질병도 함께 말이다.

     

    기대 수명이 급격히 늘어난 지금, 여전히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질병들이 박멸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여전히 더 무서운 질병에 대해 노출될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인간이 진화하는 만큼 질병 역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수한 역사적 선례들을 통해 인류는 어느 정도의 대처법을 습득해 나가고 있다고 여겨지며, 조금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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